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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따라(당일)

남한산성 탐방(140927/14-47)

고산회장(daebup) 2014. 9. 29. 13:44

대상 : 남한산성[ Namhansanseong Fortress, 南漢山城 ]

위치 :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산 1

코스 : 산성종점 동문(좌익문)- 북문(전승문) 서문(우익문) - 남문(지화문/정문) - 동문 - 산선종점

일시 : 2014927

일기 : 초여름 날씨, 매우 더웠다.

동행 : 고산회 가족 16

교통 : 8호선 지하철 산성역 2번 출구로 나오면 9, 52번 버스가 있다.

소개 :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中部面) 산성리(山城里) 남한산에 있는 조선시대의 산성. 사적 제57호로 지정되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다.

 

 

 

1963121일 사적 제57호로 지정되었다. 북한산성(北漢山城)과 더불어 서울을 남북으로 지키는 산성 중의 하나로, 신라 문무왕(文武王) 때 쌓은 주장성(晝長城)의 옛터를 활용하여 1624(인조 2)에 축성(築城)하였다.

 

남한지(南漢志)에 따르면, 원래 심기원(沈器遠)이 축성을 맡았으나 그의 부친상으로 인하여 이서(李曙)가 총융사(摠戎使)가 되어 공사를 시작하여, 16267월에 끝마쳤다. 공사의 부역(賦役)은 주로 승려가 맡아 하였다. 성가퀴는 1,700()이고, 4()8암문(暗門)이 있으며 성안에는 관아(官衙)와 창고 등, 국가의 유사시에 대비하여 모든 시설을 갖추었고, 7개의 절까지 세웠다. 다만 성의 둘레가 6,297(), 성가퀴는 1,897보라고 하는 등 문헌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러한 시설은 기본적인 것에 불과하였고, 인조 때부터 순조 때에 이르기까지 성내의 시설 확장은 계속되었다. 임금이 거처할 행궁(行宮)은 상궐(上闕) 73() , 하궐(下闕) 154간이었다. 재덕당(在德堂)1688(숙종 l4)에 세웠고, 1711년에는 종묘를 모실 좌전(左殿)을 세웠다. 그리고 사직단(社稷壇)을 옮길 우실(右室)도 세웠다. 1624년에 건립된 객관(客館:人和館)1829(순조 29)에 수리되었다.

 

관아로는 좌승당(坐勝堂일장각(日長閣수어청(守禦廳제승헌(制勝軒) 등이, 군사기관으로는 비장청(裨將廳교련관청(敎練官廳기패관청(旗牌官廳) 등을 비롯한 20여 시설과 더불어 종각(鐘閣마랑(馬廊뇌옥(牢獄),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묘(溫祚王廟), 서낭당·여단(厲壇) 등이 들어서고, 승도청(僧徒廳)을 두어 승군(僧軍)을 총괄하였다. 당시에 나라를 지키는 성군(聖軍)으로서의 불도(佛徒)의 힘은 대단히 컸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 산성의 축성에도 승려 각성(覺性)이 도총섭(都摠攝)이 되어 8도의 승군(僧軍)을 동원하였고, 이들의 뒷바라지를 위하여 전부터 있던 망월사(望月寺옥정사(玉井寺) 외에 개원(開元한흥(漢興국청(國淸장경(長慶천주(天柱동림(東林동단(東壇)7()가 창건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장경사만이 남아 있다.

 

남한산성의 수비는 처음에는 총융청에서 맡았다가 성이 완성되자 수어청이 따로 설치되었고, 여기에는 전(···후의 5()이 소속되었는데, 전영장(前營將)은 남장대(南將臺), 중영장은 북장대에, 후영장과 좌영장은 동장대에, 우영장은 서장대에 진()을 쳤다. 현재는 서장대(守禦將臺라고도 함) 하나만이 남아 있다. 장대는 높은 섬돌 위에 2층으로 지었는데, 아래층은 정면 5, 측면 3칸이고, 위층은 정면 3, 측면 2칸이다. 지붕은 팔작(八作)이며 겹처마에 위층은 판문(板門)으로 막았으나 아래층은 틔어 있다. 성문은 홍예문(虹霓門) 위에 성가퀴를 두르고 단층(單層) 문루(門樓)를 올려 세웠는데, 매우 당당하고 위엄이 있다.

 

수어사(守禦使) 이시백(李時白)이 축성 뒤에 처음으로 유사시에 대비할 기동훈련의 실시를 건의하여, 1636(인조 14)12,700명을 동원하여 훈련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그 해 12월에 막상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여러 가지 여건으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성문을 열어 화의(和議)하고 말았다. 결국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들여서 쌓은 성이었으나 제구실을 하지 못한 뼈아픈 역사(役事)였다. 남한산성은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溫祚王)의 성터였다고도 한다.

 

1963년 사적 제57호로 지정되었으며, 2014년에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남한산성 [Namhansanseong Fortress, 南漢山城] (두산백과)

 

 

 

 

 

남한산성이 올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작년부터 한번 가보려고 했었으나  탐방로는 기회가 닿지않았었다. 그래서 이번에 고산회 가족들과 겸사겸사 다녀왔다.

탐방로가 5개로 되어있는데, 우리는 가장 길며 성곽 전체를 따라 걷는 5코스를 다녀왔다. 

 

설명이 필요없다. 사진을 그냥보기만 하면 된다.

첫번째 대문 동문(왼족 날개라는 뜻의 좌익문으로 불리운다.)

 

 

 

 

 

 

 

 

 

 

 

 

 

 

 

 

 

 

 

 

 

 

 

 

 

 

 

 

 

 

 

 

 

 

 

 

 

 

 

 

 

 

 

 

 

 

 

 

 

 

 

 

 

 

 

 

 

 

 

 

 

 

 

소나무 밭에서의 점심

 

 

 

 

 

 

메생이 죽

 

 

두번재 도착한 북문, 전승문, 항상이긴다는 의미.

 

 

 

 

 

북문에서의 깃발놀이, 우리 일행 현태샘이 가지고 흔드는것을 본 다른 일행이 깃발을 뽑아보려다가 무거워서 봅지를 못한다. 힘이 좋은 사람 만 가능하다.

 

 

 

 

 

 

 

 

 

 

 

 

 

 

 

 

 

 

 

 

숯을 보관하던

 

 

가운데 있는 건물이 롯데 라나...

 

 

 

 

세번째 대문 서문에 도착, 우측 날개라는 뜻의 우익문

 

 

 

 

 

 

 

 

 

 

 

화장실이 몇 군데 보인다. 그러나 부족한 듯.

 

 

 

수어장대, 군 지휘소에 해당한다.

 

 

 

 

 

 

 

 

 

 

 

 

 

 

네번째 대문 남문에 도착했다. 남문이 남한산성의 정문에 해당한다. 정식 명칭은 지화문이라 부른다.

 

 

 

 

 

 

 

 

 

 

 

 

 

 

 

 

 

 

 

 

 

 

 

 

 

 

 

 

 

7.7km를 돌고 돌아 아침에 출발한 동문에 도착했다.

 

 

 

이곳은 문화재 보존 지역이라서 그런지 모든 건물이 한옥의 형태를 띤다. 심지어 소방서 건물도 한옥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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