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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닌곳을 기억하고, 처음가는 산우에게는 도움을 주고자 이 기록을 만든다.

산길따라(당일)

숨은벽을 가다(20181014/18-26)

고산회장(daebup) 2018. 10. 15. 11:48

숨은벽을 가다


가을을 맞아하여 북한산에서 단풍이 가장 아름 답다고 알려져있는 숨은벽 코스를 찾아갔다. 단풍은 제대로 들었는데 휴일 들어서 모든 북한산 산행객들이 숨은벽으로 모였나보다. 너무 더디게 전진 게다가 완벽한 역광으로 멋진 풍경을 담아내기는 역부족이었다. 하나더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사실 이런 코스가 맘에 들지는 않는데 같이간 아우와 짝꿍은 좋다고 난리다. 흐흐흐


일시 : 2018년 10월 14일

코스 : 밤골입구 - 숨은벽 - 인수봉과 백운대 사잇길 - 하루재 - 우이동입구

일기 : 쾌청



















역광이라서 잘보이지 않는데, 왼편 인수봉과 오른편 백운대 사이에 감춰진 숨은벽이 보인다.















숨은벽



숨은벽 아래 계곡에 단풍이 한창이다.


















숨은벽 정상 부근에서 인수봉을 바라본다. 바위꾼들이 엄청 많이 인수봉에 올라서 암장을 즐기고 있다.


















오른편 높은 곳이 백운대 정상이다.



























영봉과 우이동방면으로 갈라지는 하루재에 도착



도선사 입구 삼거리 도착



봉황각을 지난다.



봉황각 이란?


건평 28평, 2층 목조 기와집.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호. 의창수도원(義彰修道院)이라고도 한다. 서울특별시 강북구 우이동에 있는 인수봉과 백운대로 가는 입구에 있다.

천도교 제3대 교주인 의암(義庵) 손병희(孫秉熙)가 1911년 가을에 2만 7946평의 밭과 임야를 구입하여, 1912년 여기에 건물을 세우고 그 이름을 봉황각이라고 하였다. 천도교 교조 최제우(崔濟愚)가 남긴 시문에 자주 나오는 봉황이라는 낱말을 딴 것이다.

현재 걸려 있는 현판은 오세창(吳世昌)이 썼는데, ‘봉(鳳)’자는 당나라 명필 안진경(顔眞卿)의 서체를, ‘황(凰)’자 또한 당나라 명필 회소(懷素)의 서체를, ‘각(閣)’자는 송나라 명필 미불(米芾)의 서체를 본뜬 것이다.

손병희는 우리나라가 1910년 일본의 식민지가 되자 천도교의 신앙생활을 뿌리내리게 하는 한편, 지도자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수련장으로 이 집을 지었다.

손병희는 또한 1912년 4월 15일부터 이곳에서 지방교역자 21명을 선발, 지명하여 수련을 시키기 시작하였는데, 1914년 4월까지 3년 동안에 걸쳐 483명을 수련시켰다.

손병희 자신도 1912년부터 7년 동안 이곳에 살면서 천도교의 발전책과 구국운동을 구상하였다. 1919년 3·1운동의 구상도 이곳에서 하였으며, 특히 3·1운동 때 이곳을 거쳐간 간부들이 주도적 구실을 하여 3·1운동과 인연을 가진 건물이다.(다움백과사전에서  퍼온글)